254번 용병 엘라임 스토리
엘라임은 물의 정령입니다. 그녀는 대부분 물속에 있으며 아주 가끔
물 위로 가곤 합니다. 물에서도 재미있는 일은 많지만 매번 이런 일들이 있는게 아니기에 하프를 연주하는
취미도 가졌습니다. 이 하프는 물 위에서는 물론 물속에서도 연주를 할 수 있는 특별한 하프였기 때문에
모두들 엘라임의 연주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땅의 정령들은 가끔가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악보를 가져와 엘라임에게 주곤 하였습니다. 악보들을 보고 새로운 음악을 연습하게 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 연주했습니다. 자신의 연주 날이 되면 점점 많은 정령들이 몰려오는 것이 기대되고 뿌듯했기 때문입니다.
취미로 시작했던 하프가 진심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물 위에서 연주하고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던 엘라임은 즐거운 나머지 바스락거리는 풀 소리가 크게 들리기 전까진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계속 연주했습니다. 그녀는 당황했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아직 연습중인 악보인지라 물과
땅과 바람의 정령들이 아니면 오기 힘든 곳이라 누군가 나타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로는 누군가
온다 해도 정령들이라 생각했지 설마 인간이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좁은 연못 같은 물 위라지만 그녀는 회오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간에게 회오리를 날리려는 그때 인간은 다급하게 하프 소리가 좋아 자기도 모르게 다가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들려주는 노래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악보라 그런진 몰라도 엘라임 앞에 나타났던 인간은 그녀가 막히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을 잘 알려주었습니다. 슬슬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인간은 돌아가야 한다며 내일도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고 약속했던 대로 인간이 왔습니다. 둘은 오늘도 같이
연주를 하며 연습하고 잡담도 나눴습니다. 하프 연주 이후로 재미있는게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인간들은 그녀와 참 많이 달랐습니다. 거기다 인간들을
많이 지켜봤지만 같이 대화한 적은 손에 꼽아 오랜만에 듣는 인간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마냥 하프 연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연주자
이전에 물의 정령이었습니다. 거기다 일반 물의 정령이 아닌 인간들이 하는 말로 정령왕급인 물의 정령이었습니다. 하는 일도 다른 정령들보다 많았고 지켜봐야 하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이제
연주는 잠시 접어두고 본래 하던 일에 집중을 했습니다.
여러 곳을 지켜보던 중 근처에 인간들이 사는 마을이 있어 본인과 연주했던 인간이 떠올라 이 곳을 다른 곳보다
좀 더 오래 지켜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의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인간들은 물 근처로 다가오더니 온갖 쓰레기들을 버려 물을 더럽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엘라임은 처음엔 충격을 먹고 생각이 없어지더니 그 뒤로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었습니다. 맑고 깨끗했던 물이 순식간에 더러워지고 그대로 인간들은 떠났습니다.
인간들에게 증오의 마음만 갖게 된 지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50.
그녀는 모든 물의 정령들에게 ‘강이나 바다, 호수 어디든 상관없이 물 근처로 오는 인간들에게 물의 공포를 보게 하라’ 라고
통보했습니다.
당연히 인간들이 느낀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통해서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하고 다른 육지간의 물물교환도 못했으며 강이나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 간 사고들이 무척 많았으며 마을 밖을 벗어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엘라임은 마음이 시원해지기는커녕 자신이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다른 곳들에도 얼마나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났을지를
생각해 화가 더 끓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도중 그녀의 앞에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뭐라고 말을 했지만 엘라임은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저 변명일 뿐이고 듣는다 해도 화가 쌓이면 쌓였지 풀어질 거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추억을
가졌던 인간에게 다른 인간들에게 했던 짓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그녀가 베푸는 마지막 자비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엘라임은 그게 지겨워 딱 한 번 들어준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인간에게서 생각보다
많은 감정들과 즐거움을 가져갔는지 모릅니다.
인간은 또 한 번 지겨워질 만큼의 사과를 한 뒤 앞으로 물에 해서는 안 될 오히려 당연한 것들을 지키겠다며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왜인지 본인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엘라임은 이 인간에게 관대했습니다. 이 말들로 화가 풀릴 그럴 일들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을 듣곤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인간에게 전하고 정령들에게도 전했습니다.
그렇게 썩 홀가분하진 않았습니다.
사실 생각하자면 이런 일들은 인간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못 지키는 약속이었습니다.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게 영원한지, 모두가 그러는지가
아니었습니다. 엘라임은 물론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약속이긴
하지만 말뿐인 약속이라고 그게 자신이 봐왔던 인간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반성의 시간이라며
당분간은 이러지 않는 다는 생각으로 이제 이 일에 대한 생각은 그쳤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엘라임은 잠시 바쁘긴 했지만 언제 이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소와 같이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살아왔던 세월들을 생각하면 아무런 감흥이 없던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오랜만에 잡아보는 하프였습니다. 연주를 시작하자 그래도 한구석으론 불안했던 마음이 평온해져 갔습니다.
이때 인간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 건지는 몰라도 인간은 자신을 찾아와 다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실 본인은 이쪽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며 엘라임도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밉지만 그래도 좋아하던 인간의 악보였습니다. 그런 악보들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궁금했기에 그녀는 수락했습니다. 그러자 인간은 신난 듯 그동안 풀지
못하였던 이야기들을 마구 이야기 하였습니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 하는 이야기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처음에 봤던
것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도 그만큼 빨리 갔습니다. 나누면서 들었던 생각은 공연 날이 얼른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공연 날이 찾아왔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인간들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하프를
연주하지 않았을 때라 그런지 딱히 관심이 없어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2명, 3명도 아닌 여러 명에서 모두 본인의 악기에 맞게, 합을 맞춰 연주를
하여 듣기 좋게 만들어지게 된 음악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자신이 혼자 하프를 연주하는 그런 연주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오늘 이 연주를 듣지 못했으면 아마 살아가면서 평생 후회됐을 거라는 생각이 확실했습니다.
자신을 이런 곳에 초대해준 인간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정말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무대는 막이 내려졌습니다.
인간에겐 정말 고마웠습니다. 정말 고마웠지만 본래 자신은 물의 정령입니다. 언제까지고 인간과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며 평생 하프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물의 정령인 이상 자신이 맡은
바를 꾸준히 해야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자신이 맡은 바를 다 끝마치게 된다면 저 인간처럼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저 인간과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지만 더 이상의 정을 가지면 안됐습니다. 혹시나 이후에도 자신을 찾으러 다닐지는 몰라도 자신이
피한 다든지 하여 만남을 가져서도 안됐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다시 물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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