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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三國志가알려주는 삼국지 정사 이야기4 삼국지 연의 허구
작성자 대령1三國志 작성일 2015-06-11 18:05 조회수 648

삼국지의 내용 가운데 진실은 역사적인 흐름입니다. 황건난, 동탁의 난,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런 것들이죠. 그러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각색이 이뤄지기 때문에 진실 아닌 것이 무척 많은데 질문에 맞춰서 몇가지을 정리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알고잇는 삼국지 연의내용과다른 삼국지 정사에기록된 역사글을적어봣습니다;;


1 . 도원결의는 거짓이다.

하늘에 맹세하기를 마치자 관우는 현덕에게 절하여 둘째가 되고, 장비는 현덕과 운장에게 차례로 절하여 막내가 되었다... 「나관중삼국지 1회」 ’

그러나 정사에는 정사에서는 도원결의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관우(關羽)는 자(字)가 운장(雲長)이고 본래 자(字)는 장생(長生)이며, 하동(河東)군 해(解)현 사람이다. 망명하여 탁군(?郡-유주 탁군)으로 달아났다. 선주(先主)가 향리(鄕里)에서 도중(徒衆-무리)을 모으니 관우는 장비와 함께 그를 위해 어모(禦侮-보디가드)했다. 「관우전」

장비(張飛)는 자(字)가 익덕(益德)이고 탁군(?郡)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선주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그를 형으로 섬겼다.「장비전」


2 . 독우를 매질한건 장비가 아니라 유비였다.

‘ 독우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장비는 다짜고짜 독우의 머리를 움켜잡아 역관에서 그대로 현청 앞까지 질질 끌고 갔다. 관청 문 앞에는 말을 매어두는 기둥이 있었다. 장비는 그곳에다 독우를 붙들어매고, 옆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그의 종아리를 힘껏 때리기를 삽시간, 부러진 버드나무 가지가 10개가 넘었다... 「나관중삼국지 2회」’

그러나 장비를 매질한 건 유비였습니다.

독우(督郵)가 공무로 (안희)현에 도착했다. 선주가 그를 만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곧바로 들어가 독우를 묶고 장(杖) 2백 대를 때렸다. 』「선주전」


3 . 화웅의 목을 벤 사람은 관우가 아니라 손견이였다.

일제히 쳐다보니 관우가 화웅의 머리를 들고 와서 보란듯이 내팽겨쳤다. 따라놓은 술이 미처 식지 않은 사이였다. 「나관중삼국지 5회」 ’

하지만 화웅을 죽인 건 관우가 아니라 손견이였습니다.

손견은 다시 병사들을 수습하여 양인(陽人)에서 동탁군과 싸워대파하고, 동탁의 도독 화웅(華雄) 등의 목을 베었다. 「손견전」


4 . 여포와 유비 삼형제는 **관에서 싸우지 않았다?

장비와 여포가 겨루기를 50여 합, 이를 지켜보던 관운장이 춤을 추듯 82근짜리 청룡도를 휘두르며 내닫는다. 「나관중삼국지 5회」 ’

그러나 유비 삼형제는 여포와 겨루지 않았습니다.

고당위(高唐尉-청주 평원국 고당현의 현위)에 임명되었다가 (고당현)령으로 승진했다. 선주전」

유비는 고당현령으로 승진하여 임관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5 . 초선은 실존하지 않았다.

왕윤은 초선으로 여포를 꾀여 미오 정문에서 동탁을 죽였다. 「나관중삼국지 9회」

하지만 초선은 실존하지 않았습니다.

동탁은 늘 여포에게 중합(中閤)을 지키게 했는데, 여포는 동탁의 여자종과 사통하니 그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며 내심 불안해 했다. 「여포전」

여포는 초선이 아니라 동탁의 시비와 사통했을 뿐입니다.


6 . 도겸은 성인군자가 아니였다.

도겸은 어진 사람으로 결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의리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외다... 「나관중삼국지 10회」’

기록을 보면 실제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주지방의 학살은, 실로 도겸이 융통성 없었기 때문이었다.[徐方殲耗 實謙爲梗]『후한서』「도겸전」

조굉(曹宏)등은 헐뜯기 (좋아하고) 간사한 소인배였는데, 도겸은 매우 친하게 대하고 이들에게 (일을) 맡기니, 선량한 사람들이 그 해를 입었다. 이로 인하여 (다스림이) 점점 어지러워졌다.『후한서』「도겸전」


7. 손책이 강동을 정복할 때 팔 힘만으로 적장을 죽인 것은 거짓입니다.


8. 관우는 문추를 죽인 기록이 없고 원소가 조조를 칠 때 동원한 군사도 백만은 아니었습니다.


9. 관우는 오관을 돌파한 적도 없고 여섯 장수를 베지도 않았으며 그저 조조에게서 달아나 유비에게로 돌아왔을 뿐입

니다. 애초에 유비의 부인들과 허에 간 것도 아닙니다.


10. 서서는 자신의 어머니의 편지글에 허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전쟁터에서 실제로 사로잡혔기 때문에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북쪽으로 돌아갔습니다.


11. 박망파전투는 제갈량이 지휘한 것이 아니고 유비가 직접 화공을 계책했습니다.

12. 장판에서 아두를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운이 백만 대군을 뚫고 돌아온 것은 과장되었습니다.

13.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준 관우의 일화는 거짓입니다.

14. 제갈량의 동남풍 부르기는 거짓이고 화공을 하는 날 때마침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5. 화살 10만 개 모으기는 거짓이며 화살을 양쪽에 받아 기울어진 배를 바로 잡은 것은 손권의 일화입니다.

16. 위연의 반골 상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17. 마등이 죽어 마초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마초가 조조에게 대항했기 때문에 마등 일족이 숙청되었습니다.

18. 낙봉파에서 죽은 방통의 이야기는 거짓이며 낙성을 공격하던 중에 빗나간 화살에 맞아 불운하게 죽었습니다.

19. 여몽에게 빙의한 관우 일화는 거짓입니다.

20. 유비가 일으킨 75만은 과장이며 최대 10만 남짓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1.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사실이지만 남만 정벌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습니다.

22.조운이 1차 북벌에서 한영을 비롯한 5장을 베어 죽인 일화는 거짓입니다. 조운은 조진을 현혹시키는 양동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23. 하후돈의 애꾸눈 사건은 사실이지만 하후연에 필적할 용장이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24. 제갈량은 사마의를 유인하여 불태워죽이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사마의는 시종일관 수비를 철저히 해서 제갈량을 낙담하게 했습니다.

25.삼국지연의에서나오는제갈량의남만정벌이야기는 허구이다

26. 유종은 우금에게 피살된적이 없다.

27. 범강 장달, 미방 부사인은 촉나라로 되돌려보내진적이 없다.

28. 실제로 노숙은 매우 빼어난 사람이다. (소설속에서와 같이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다)

29. 초선차전 (적벽대전 전 제갈량이 조조에게 화살10만개를 빌린것) 은 사실이 아니다.

30. 황개는 주유에게 태형을 받은 적이 없다. (고육지계는 허구의 고사다)

31. 위연은 항장(降將 : 항복한 장수)가 아니라 병사 신분으로 출세한 인물이다.

32. 태사자는 합비 전투에서 죽지 않았다.

33. 마초의 반란은 마등의 죽음으로 인한것이 아니라 마초의 반란으로 인해 마등 및 일족이 참수된것이다.

34. 방통은 낙봉파에서 죽은것이 아니라 낙성을 공격하다가 유시(流矢 : 날아오는 화살)에 죽었다.

35. 한중공방전의 촉군의 지휘자는 제갈량이 아니라 법정이다.

36. 양수는 '계륵' 사건으로 한중에서 죽은것이 아니다.

37. 촉한의 '오호대장군'은 실제로 존재한것이 아니다.

38. 방덕이 관을 메고 출전한적은 없다.

39. 관우의 팔을 치료한것은 화타가 아니다.

40. 조조는 의총(가짜무덤) 72기에 묻힌적이 없다.

41. 제갈량의 석병팔진에 육손이 갇힌적이 없다.

42. 관흥과 장포는 동오 침공에 활약한 적이 없다.

43. 제갈량이 편안히 앉아서 5로대군(5갈래길의 50만의 대군)을 평정 한일은 허구이다.

44. 칠종칠금은 없었던 일이다.

45.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 성을 비우는 계략)는 사실이 아니다

46.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은것은 허구이다.


개인적으로 도원결의는 잇엇던거같습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에서않나와서.

의심이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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