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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屈原(굴원)에 대하여 (4)
작성자 소위2영자장애 작성일 2013-12-28 19:34 조회수 6
굴원 屈原 

 기원전 340~277 名平,又名正則,字靈均,戰國時楚人。傳為湖北秭歸仁。出身貴族,曾做左徒、三閭大夫,懷王時,主張聯齊抗秦,選用賢能,但受貴族排擠不見用,遭靳尚等人毀謗,被放逐於漢北,於是作《離騷》表明忠貞之心;頃襄王時被召回,又遭上官大夫譖言而流放至江南,終因不忍見國家淪亡,懷石自沉汩羅江而死。其忌日成為後人紀念他的傳統節日 -- 「端午節」。重要著作有《離騷》、《九章》、《天問》等賦,對後代文學影響極大。

《離騷》是屈原的代表作,是我國古代最長的一首抒情詩,全詩共二千四百多字。是一首浪漫主義作品。比喻生動,語言瑰麗,誇張大膽,詩中融入大量的神話傳說及歷史人物故事,使詩篇波瀾起伏,千變萬化,雄偉奇觀。屈原創造了騷體,即「楚辭」為後世詩人的創作開闢了無限的空間。


굴원 屈原 BC343?~BC277?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 시인. 초왕의 일족(一族)으로, 회왕(懷王)· 경양왕(頃襄王)을 섬겼다. 박학하고 정치에 밝으며 변재(辯才)가 뛰어나 회왕의 신임을 얻어, 진(秦)나라와의 분쟁중 내치(內治) 외교에 활약하였다. 그 후 중상모략으로 실각, 방랑하다가 국난(國難)을 걱정하며 미뤄강〔羅水〕에 투신자살하였다. 작품은 모두가 울분의 감정에 넘치며, 또 몽환적 세계 묘사가 뛰어나다. 초사(楚辭)문학의 창시자로서 《초사》에 〈구가〉 〈구장〉 〈이소〉 등 모두 25편이 실려 전한다.

 

초사 楚辭 한나라 말기의 학자 유향(劉向)이 편집한 시가 총집. 전16권.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인 송옥(宋玉)· 경차(景差)의 작품 및 한대의 작가와 자작 1편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후한의 왕일(王逸)이 자작 1편을 더하여 전17권이 되었다. 대표적 주석서로 홍흥조(洪興祖)의 《초사보주(楚辭補註)》 17권, 주희(朱熹)의 《초사집주(楚辭集註)》 8권 등이 있다. 

 

굴원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클릭하세요! 꽃어름눈물이 인터넷을 하면서 가장 인상깊은 홈이 있었다면 바로 한양대학 중어중문학 교수님이신 이인호 교수님의 홈페이지입니다. 부디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http://web.hanyang.ac.kr/~pendar/literature/litertory/1000/1500.htm 
 

송옥 宋玉 BC290?~BC222?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의 제자로 벼슬은 대부(大夫)였다. 《초사(楚辭)》 가운데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난 것을 번민하며 지은 〈구변(九辯)〉과 〈초혼(招魂)〉은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 밖에 《문선(文選)》에 실린 〈풍부(風賦)〉 〈고당부(高唐賦)〉 〈신녀부(神女賦)〉 등의 부 12편도 글이 교려(巧麗)하여 한위육조(漢魏六朝)에 퍼져나갔다. 또 여자의 자태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 중국의 시· 사(詞)· 소설 등에 나타나는 풍류재자(風流才子)의 상징이 되었다.굴원(屈原)은 이름을 평(平)이라 하며 중국 초나라의 왕족이다.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나 왕의 보좌관(左徒)에 임명되었다.궁중에서는 왕의 상담역을 맡았으며 외교면에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여 그에 대한 왕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얼마 후,초나라 왕족을 통괄하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다.그러나 조정중신들은 한결같이 굴원을 시기하여 그의 실각을 노리기만 하였다.이윽고 상관대부(上官大夫)의 이간질에 넘어간 왕은 굴원을 멀리하며 무슨 말이던 듣지 않으려 했다.굴원은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왕은 중상이나 아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진언의 옳고 그름을 간파하려 하지 않았다.속 검은 신하들이 국사(國事)를 독점하고 정당한 의견은 항상 무시되었다.결국 굴원은 우울하고 슬픔에 *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드디어는 강남(江南)으로 추방당하였다.머리는 산발하고 강변을 음행(吟行)하는 굴원(屈原)을 보고 어부가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왜 이런 곳에 계시는지요?』

 

그러자 초췌한 안색으로 있던 굴원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맑다.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있다.그래서 이곳으로 쫓겨난 것이다』

 

어부가 다시 물었다.

 

『사물에 구속받지 않고 세상의 추이에 몸을 맡기며 사는 것이 성인이 취할 방도라 들었습니다.세상이 혼탁하다면 어째서 자신은 같이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슴속에 주옥을 품었으면서도 왜 스스로 피할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까?』

 

굴원은 다시 대답하였다.

 

『얼굴을 씻고는 모자의 먼지를 털고,의복도 간추려 입지 않는가? 결백한 몸을 그런 때로서 더럽힐 수가 없다.차라리 그럴 바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어찌 세속에 몸을 더럽힐 수가 있겠는가?』

 

대답을 마친 굴원은 다음의 회사부(懷沙賦)를 지었다.

 

 

 

햇빛 내리쬐는 여름.수목(樹木)은 울창하네.

상처 입은 마음 안고 남(南)으로 급히 떠나는 오늘,

산(山)들은 깊고 어둡게 가라앉아 소리도 없네.

무겁게 짓누르는 아픔과 슬픔은 날을 따라 깊어질 뿐,

억눌러 *지만 치미는 격정은 어쩔 수가 없구나.

네모를 깎아 둥글게 하더라도 법칙은 바꿀 길이 없네.

처음 뜻(初志)을 꺾는 일은 군자(君子)가 천시하는 일이며

선(線)을 긋고 먹줄을 쳐도 앞길은 굽힐 수 없네.

묵중하고 곧음이야 말로 군자(君子)가 취할 바이고,

도끼를 휘둘러 깎지 않으면 정확한 칫수는 알 길이 없네.

검은 모습도 어둠 속에 있으면 눈 뜬 장님은 구별할 길 없고,

눈 뜬 사람도 눈 감으면 장님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네. 

 

아! 세상은 역(逆)이로다.

 

백(白)을 흑(黑)이라 하며 위를 아래라 하네.

봉황은 농(籠)속에 갇히고 닭,꿩이 하늘을 날면서 춤추네.

옥석(玉石)을 뒤섞어 한꺼번에 됫박질을 하다니.

천한 친구는 시샘만 많아 내 보배는 그대로 썩는구나.

무거운 짐을 산처럼 쌓고 흙구덩이에 빠진 괴로움.

주옥(珠玉)을 지녔으면서 보일 상대가 없네.

마을의 개가 짖음도 상대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

삐죽 나온 못 **리 얻어 맞음은 흔한 세상사이련만,

공치사 한 마디 못하는 이 몸.

내 이채(異彩)를 인정받을 길 없네

출저: boolingoo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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