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나의 연대기 - 너와 다른 세계 [작가 7080] | |||||
작성자 | 하사47080 | 작성일 | 2018-03-15 22:26 | 조회수 | 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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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대기 - 너와 다른 세계 그 아이에게서 편지가 온 것은 2주 전 즘의 일이다. 그녀는 학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곤한 몸으로도 늘 우체통을 확인하고는 했다. 아이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정도의 간격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왔지만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항상 우체통을 확인했다. 문제의 편지가 도착한 것은 그녀가 아이에게 편지를 보낸 지 한 달하고도 하루가 넘은 기간이었다. 좁은 원룸으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아직 뜯지 않은 편지가 들려 있었다. 원룸은 낡은 편이어서 벽 모서리에 조금씩 곰팡이 같은 것이 껴있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방 크기도 적당하고, 꽤 깔끔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원룸은 강남 쪽이었으니 이 정도 방만 해도 괜찮다고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은 생각했다. 오히려 그녀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으려 그것을 잠시 신발장 위에 올려두었다, 신발을 벗고 나서는 곧바로 다시 손에 쥐어들고는 방으로 곧장 들어갔다. 방에 들어갔다고 해 봤자 현관 바로 앞의 부엌과 칸막이로 가려 놓은 곳으로 들어간 것 뿐 이었지만. 아무튼, 누군가는 간혹 부러워하는 방에 들어간 그녀는 편지를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옷을 벗었다. 하얀 와이셔츠부터 검은색 바지, 마지막으로 브래지어까지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시원함을 넘어 안정감까지 느꼈다. 아직 냄새가 나지 않은 와이셔츠와 바지를 옷걸이에 대충 걸어두고 브래지어만 방구석에 있는 빨래 통에 던진 그녀는 부엌으로 나와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집에 오는 내내 칼칼했던 목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아, 편지.
일련의 의식 같은 행위가 끝나자 그녀의 머릿속에 뜯지 않은 편지가 생각났다. 화장대에 올려둔 편지가 지이익,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편지는 정성들인 것처럼 또박또박 쓰인 *힌디어가 적혀져 있었다. 아이는 처음 편지를 줄 때에는 영어를 썼었지만 그녀가 힌디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조금씩 힌디어를 섞어 쓰더니, 요새는 거의 힌디어로만 써서 주고는 했다. 그녀는 사실 봉사 활동으로 인도를 몇 번 오고 가면서 힌디어를 조금 배운 게 다였지만, 굳이 그것을 아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와 그녀가 만난 것도 봉사 활동 때였다. 그녀는 인도 아이들에게 구호 물품을 전해주는 것과 더불어 공부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글을 쓰는 법도 몰라 수업은 거의 놀자, 판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를 만나는 날도 수업은 진행되지 않았고 그녀는 반포기 상태로 수업을 마치고 구호단 안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 때, 어디서인가 튀어나온 아이가 그녀를 막아섰다. 아이는 14살에서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히잡을 두르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신발이나 옷매무새로 봐서는 구호단체에 있을 것 같은 차림새는 아니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아이를 쳐다봤다. 입 부분까지 감겨있는 히잡을 조금 내린 아이가 자신도 공부를 배워볼 수 있냐, 고 물어봤다. 말을 하면서도 아이의 눈은 쉴 새 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양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당시에는 구호를 받을 대상이 아니라 거절을 당할까봐 그러는 건가, 생각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근데 여기는 전체가 다 같이 수업을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거의 수업 진도도 나가지 않고 아마 수준이 맞지 않을 것 같다, 며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덧붙여 학교는 안 나가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고 입을 꾹 다물었다. 사정이 있어보였지만 더 캐묻는 건 원하지 않는 것 같아 그녀는 묻지 않았다. 여기서 도움 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구나, 미안하다, 며 말했다. 아이는 어딘가 체념한 표정으로 알겠다, 며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그녀를 등지고 걸어갔다. 그 표정과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편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3시부터 7시까지의 자율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그 시간을 쉬는 것 보다는 한국에서 돌아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거의 공부하는 시간으로 쓰고는 했다. 그 시간 중 30분 정도는 여유가 될 것 같았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라도 해보자 싶어 그녀는 곧장 아이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얘, 거기 서 봐.
아이는 용케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알아듣고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오, 그래, 멀리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조금 더 뛰어 아이에게 다가간 그녀가 영어로 말했다. 다행이라고 말하며 웃는 그녀를 아이는 빤히 바라보았다. 히잡으로 둘러싸인 얼굴 중에 유일하게 내 놓은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 눈동자를 보니 30분이라도 좋으면 할래, 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적당한 단어를 고르지 못하고 아이에게 30분의 수업이 어떤 지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가 가능하다고 했고, 그녀는 그럼 4시에 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알겠다, 며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시간까지 모두 잡자 아이는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씩이나 하고서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꼭 4시까지 오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날 4시부터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착실한 학생이었고, 공부도 퍽 잘하는 편이었다. 그럴 때 마다, 왜 학교를 안 다닐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녀는 사실 대충 알 것 같기는 했었다. 인도에서는 아직 여자가 공부를 해 봤자 쓸모없다는 인식이 박혀있었어 집 안 사정이 좋다 하여도 학교를 보내 주지 않는 곳이 종종 있다고 구호단체 분들끼리 하는 얘기를 심심찮게 그녀는 들어오고는 했다. 아마 아이도 그 ‘종종’중 한 명일 것이라고 그녀는 의연 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몇 가지 있었다. 아이의 이름과 사는 곳, 그리고 14살이나 15살이 아닌 17살이라는 것, 가끔 올려붙이는 손목이나 팔목 같은 곳에 멍이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선 가족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한다는 것, 거의 봉사활동이 끝나 갈 즈음에는 가끔 가다 아이가 자신에 대해서 얘기해주고는 해서 그녀는 생각보다 아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이 내년이면 결혼한다고 얘기해주었는데, 그러면서 결혼이 아니고 팔려가는 거라고, 자신은 **녀처럼 누군가에게 팔려가는 거라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꼭 푸른색으로 물들여 져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아이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고는 했다. 아이가 해주는 얘기 중 종종 그녀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거의 80퍼센트가 한국 교육과 생활에 대한 얘기였고 나머지가 왜 자신을 가르쳐 주겠다고 생각한지에 대한 얘기였다. 처음에 그 질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아이는 그녀에게 동정심이냐고도 물어봤다. 동정심, 동정심인가. 그것도 맞는 것 같았다. 아니면 봉사에 대한 책임감인가, 자신이 그렇게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모호하게 모두 맞다고 대답했다. 6개월의 봉사활동이 끝나고, 아이와는 2개월 남짓의 수업이 끝나고, 그녀는 오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수업 날, 아이는 조금 빨개진 눈으로 그녀에게 주소를 적은 쪽지를 주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할 테니 답장을 줄 수 있겠느냐고. 그녀는 아이의 쑥스러운 진심에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쪽지를 건네받았다. 아이와 그녀는 그렇게 시작한 편지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막 19살이 되려 했고, 아이의 말대로 팔려가듯 결혼을 당했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공부하여 임용고시를 쳤고 무사히 붙어 지금은 학교에 들어간 것이 한 달 정도 되었다. 편지는 그 때 말한 것처럼 모르는 문제를 물어올 때도 있었고, 혹은 자신의 안부를 전해올 때도 있었다. 아이는 그녀가 편해졌는지 종종 욕을 섞어 자신의 아버지 혹은 남편을 무작위로 욕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죽여 버리고 싶다, 라고 까지 했었다. 아이의 남편은 아이보다 15살이나 많았는데, 아이의 집이 어떠한 사정으로 기울어가자 아이의 아빠가 아이부터 젤 먼저 갖다 판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격분했지만 그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이를 위로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도 겨우 강남의 원룸을 구해 뿌듯해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도착한 편지에는 그녀가 학교를 다니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과, 역시 그녀라면 해낼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자신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았는데, 이제 진짜 그럴 수 없어 슬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는 그 문장에서 조금 슬픈 기분과 함께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진짜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바로 뒷 문장, 즉 마지막 문장을 읽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난 오늘 아버지를 죽이고 여기를 떠날 거야.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웠어.
거기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