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라 산의 투신자살 이야기
(일본 미하라산의 분화구)
활화산인 미하라산은 1993년 1월, 도쿄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여학생 두명이 정상의 분화구에 오르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다. 당시 24세였던 우케이 메이코는 분화구에 뛰어들겠다고 친구에게 선언했다. 순식간에 화장되어 연기와 아름다움 속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친구에게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그녀는 몸을 던졌다.
동행했던 도미타 마사코는 21세였다. 그녀는 또 한명의 친구에게 메이코의 투신자살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도 메이코의 뒤를 쫒아 미하라의 문을 통해 낙원에 가고 싶다며, 마사코에게 미하라 산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던 마사코는 2월 중순 친구와 함께 분화구에 올랐다. 친구는 몸을 던졌고, 마사코는 도쿄로 돌아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미하라 산을 찾았다.
(I'll be back)
증기선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여 더 큰 배로 대체될 정도였다. 두명의 젊은 여성이 자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어느 일요일 6명이 분화구에 뛰어들었고 25명은 물리적인 제재를 받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1주일에 5~6번꼴로 일어나는 투신자살을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생길 정도였다. 그 해 1년동안 적어도 140명이 분화구에 몸을 던졌고 다음해인 1934년에는 160명 이상의 사람이 분화구에서 투신 자살을 했고, 1200여명이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경찰은 24시간 체제로 분화구에서 감시활동을 폈고, 높은 철조망을 둘러쳤다. 하지만 1936년에는 최소한 600여명의 사람이 미하라 산에서 목숨을 끊었다. 결국 분화구로 올라가는 진입로가 봉쇄되었지만 이 결론이 나기까지 적어도 10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분화구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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