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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금속활자-1
작성자 상사4미스릴 작성일 2008-07-13 19:53 조회수 348
인류 최고의 발명품 금속활자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10대 발명품을 들라고 하면? 바퀴, 문자, 금속활자, 시계, 항생제, 화약, 나침반, 증기기관, 컴퓨터.... 이런 것 아닐까? 어떤 이는 화장실이나 근대적 배관시스템도 중요한 발명으로 손꼽는다. 위대함의 기준은 바로 그것의 파급력(impact)일 것이다. 

  하여튼 금속활자도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종교혁명을 통해 중세의 종말을 가져왔고, 인쇄물의 대중화를 통해 근대적 합리성으로 이르는 길을 열었다. 그러면 최초의 금속활자는 언제 만들어졌나? 애국심을 시험하는 문제이다. 

  내가 배우기로는 1234년 고려 고종 때 ‘상정고금예문’이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으나 현존하지 않고, 1377년에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 지금 남아 있는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고 한다. 그러니 1456년에 만들어진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에 의해 인쇄된 ‘42행성서’보다 80년 가까이 앞선 것이다. 그런데 왜 세계인들은 구텐베르그가 최초라고 배우고 있을까? ‘직지’도 과잉된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역사 왜곡인가? 

  그런데 좀 더 찾아보니 중국에서는 원나라 때 ‘어시책’이라는 것이 1341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으니 이것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것은 목판본으로 밝혀진 모양이니 일단 경쟁에서 탈락했다. 남은 것은 ‘직지’와 구텐베르그 성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1447년에 이미 한자가 아닌 한글 금속활자도 만들었고 그것으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도 찍었단다. 국사 시간에 더러 외운 조선 초의 ‘계미자’, ‘갑인자’라는 것도 금속활자란다. 
  그러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확실하다.  

구텐베르그가 더 유명한 이유

  그런데도 ‘직지’보다 구텐베르그가 더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과 한국의 국력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그것 즉 금속활자의 사회적 파급력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파급력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지 곰곰 생각해 본다. 

  첫째, 알파벳 문자와 표의문자의 차이 
  중세 수도사에 의해 이루어진 필경에 비해 금속활자가 우수한 이유는 명확하다. 여러 벌의 인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목판인쇄보다 우수한 이유는? 물론 내구성 측면에서 활판의 재질도 중요하지만 바로 ‘조립식’이라는 장점이다. 알파벳 하나하나를 조립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과 변형이 자유롭다. 그런데 28자의 라틴어 알파벳이 아니라 수천자의 한자라면 말이 달라진다. 즉 조립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전체 글자의 주조도 몇 백 배는 더 어려울 것이고 식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참고로 라틴어로 씌어진 구텐베르그 성서의 활자를 배열하는 데도 6명의 식자공이 2년간 매달렸다고 한다. 같은 경우라면 한자는 훨씬 더 많이 걸렸을 것이다. 결국 한자의 경우 활자 인쇄의 효율성이 알파벳만큼 발휘되기 어렵고, 그만큼 책의 보급도 빠르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콘텐츠와 수요의 차이 
  인쇄는 하드웨어라면 책에 담는 내용은 콘텐츠이다. 콘텐츠가 있어야 인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쇄물 즉 책에 대한 수요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콘텐츠, 바로 그 사회가 생산해낼 수 있는 지식이나 정보의 양이다. 나로서는 14세기나 15세기 동서양의 지적 축적의 양을 비교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15세기 서양은 르네상스라는 인문학의 시대였으며, 새로운 사상이 주체할 수없이 튀어나오던 시대였다. 그만큼 인쇄물 즉 책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것이다. 콘텐츠 없는 하드웨어는 무용지물이다. 

  셋째, 설법동기와 이윤동기 
  ‘직지’는 청주 근처의 흥덕사에서 인쇄되었는데, 백운화상이라는 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을 그 제자들이 인쇄한 것이다. 반면 구텐베르그의 인쇄소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 돈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척점에 있고, 무릇 이윤에 대한 집착은 색즉시공이라는 말씀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법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유럽 전역으로 퍼진 금속활자의 인쇄소들은, 새로운 사상이라는 콘텐츠의 공급과 지식과 책에 대한 대중의 폭발하는 수요에 부응하여 포도주를 짜던 압착기로 책을 찍어내기 시작했고 유럽은 곧 책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1501년 로마의 인쇄업자 마누티우스는 이탤릭체라고 하는 빽빽한 글자체를 도입하여 ‘알두스문고’라는 유명한 포켓북 시리즈를 내놓았다. 불과 반 세기전만 하더라도 수도원의 책상에 쇠사슬로 묶여 있던 10kg짜리 책이 이제 대중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다음은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 발명이 반세기 만에 유럽의 인쇄문화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들이다. 
1. 구텐베르그 성서는 총 1282 페이지가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크기는 42X30cm, 본문은 2단으로 되어 있고 각 단은 42행이었다. 이를 위해 약 5천장의 송아지 가죽과 약 5만장의 종이를 샀다. 
2. 1450-1470년 사이에 마인츠 외에 퀄른, 바젤, 로마, 베네치아, 파리, 뉘른베르그 등 14개 도시에서 인쇄소가 문을 열었고, 1480년경에는 100개 이상의 인쇄소가 있었다. 1500년 경에는 260여개 도시에서 1100여개의 인쇄소가 있었다. 
3. ‘마틴루터의 신약성서’는 3000부가 넘는 1쇄본이 두달만에 모두 팔렸으며, 1522-1525년 사이에 적어도 8만 6000부가 인쇄되었다. 책값은 보통 노동자의 반달치에서 두달치 월급에 해당했다. 
4. 16세기 초 스트라스부르에서 인쇄된 책을 종류별로 분류하면 가톨릭서적 8%, 신교서적 30%, 과학서 16%, 인문학 11%, 성경 및 성서해설 1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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